포토/일반사진

한강역사탐방

애시1 2023. 6. 4. 15:17

2023년 6월2일 금요일 날씨 더울까봐 걱정과는 달리 햇살이없고 바람이 많은 시원한 날씨에 노들나루와

노들섬 탐방에 흑석역 1번 출구에서 해설사와 회원6분 만나 효사정으로 가다. 효사정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많아서 조금 힘든 코스였다. 

효사정은 세종조에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노한대감의 별서였다. 노한대감의 자는 유린이며 시호는 공숙공이다. 노한대감이 모친을 여의고 3년간 시묘를 했던 자리에 정자를 짓고, 북쪽 개성에 있는 아버님 산소를 바라보며 추모했던 곳이다. 당시 이조판서 강석덕이 효사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 정자는 효사정의 제자리를 찾기 위해 정인지, 서거정 등의 시문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찾고 하였으나, 주위환경 변화로 부득이 이 자리를 선정하여 신축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5량 집 구조와 검소한 인도리가구 구조의 팔작기와 지붕에 온돌방 1칸을 겸한 정가형식으로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효사정 정자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효사정에서 바라본 한강

 

서울 동작구에서 출생하여 인생의 상당 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던 문학가 심훈(沈熏, 1901~1936)의 동상, 효사정 바로 아래에 조성되어 있다.

심훈의 대표시 그날이오면 

용양봉저정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릉원에 갈때 배다리로 한강을 건넌후 쉬어가던 노량 행군이다.여기서

점심을 들었다 하여 주정소라 하였다한다.또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나는것 같다하여 용양봉저정이라 하였다한다.

사육신(死六臣)이란 , 수양대군이 왕인 단종을 폐하고 세조로 즉위할때, 단종의 복위를 주도하다가 죽임을 당한 6명의 신하를 말한다. 이와 덧붙여서 세조의 즉위 후,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궁궐을 떠나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6명의 신하 생육신(生六臣)이 있다.

사육신이 죽은 후 생육신중 한명인 김시습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었고 그것이 사육신묘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그당시 함께 처형된 김문기 묘도 조성되어 7개의 묘비가 되었다.

 

사육신묘(7개 묘비가 있었다)

한강철교와 한강이 보인다

날씨가 흐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 아쉬움